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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메모장
이전편, 조선 최고 교육기관, 학제편 성균관 유생들은 정규 교육 과정 이수와 더불어, 기숙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자치 활동에 참여했다. 이들은 '재회(齋會)'라는 자치 기구를 조직하여 내부 규율을 정했고, '유소(儒疏)'나 '권당(捲堂)'과 같은 집단행동을 통해 국가 정책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이러한 자치 및 정치 활동은 공식 학제와 함께, 유생들이 향후 관료로서 필요한 공동체 운영 능력과 정치적 소양을 함양하는 과정으로 기능했다.#유생들의 생활공간_유생로서의 생활성균관 유생들의 삶은 기숙사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은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학문을 토론하고 공동체의 규칙을 배우며 미래의 동료들과 관계를 맺는 사회생활의 중심지였다. 유생들은 의식주 일체를 국가로부터 제..
조선 왕조의 근간을 이룬 것은 유교 이념으로 무장한 사대부 관료들이었다. 이들을 길러낸 공식적이고 유일한 최고 교육기관이 바로 성균관(成均館)이었다. 성균관은 단순히 학문을 가르치는 곳을 넘어, 입학부터 졸업(혹은 과거 급제)까지 모든 과정이 국가의 엄격한 시스템 아래 관리되었다. 이곳의 학제는 장차 나라를 이끌 인재들에게 요구되었던 소양과 자질이 무엇이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성균관 유생이 되는 법성균관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양반 사대부 자제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으나, 입학을 위해서는 정해진 자격을 반드시 갖추어야 했다. 정원은 개국 초에는 150명이었으나 세종 대에 200명으로 증원되었다. 이후 입학 정원은 국가의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_입학 자격『경국대전』에 명시된 입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