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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이방과, 왕좌를 원하지 않았던 왕 본문

역사, 인물/조선

정종 이방과, 왕좌를 원하지 않았던 왕

cocolivingdiary 2025. 10. 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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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긍정전 어좌
창덕궁 긍정전 어좌 출처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1037718&menuNo=200018

조선 왕조의 계보에서 제2대 왕 정종(定宗, 재위 1398~1400)은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동생 태종 이방원이라는 거대한 두 봉우리 사이에 가려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군주이다.

 

기록 속 그는 왕위에 대한 욕심 없이 동생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격구( 말을 탄 상태로 숟가락 모양의 막대로 공을 쳐 승부를 내는 경기.)나 사냥을 즐기며 조용히 여생을 보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가 왕위에 머무른 짧은 2년은 그저 '과도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 왕좌를 탐하지 않았던 왕자

 정종의 본명은 이방과로,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성품은 순하고 성실했으며, 무인으로서의 용맹함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고려 말부터 아버지를 따라 왜구 토벌에 나서는 등 충실한 아들이자 장수였지만, 동생 이방원과 같은 정치적 야심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그의 의지와는 무관했다. 1398년, 동생 이방원이 일으킨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세자 이방석과 정도전 등이 제거된 후, 왕위 계승 문제가 대두되었다.

 

실권을 장악한 이방원은 형제들 중 연장자이자 성품이 온화한 이방과를 세자로 추대했다. 기록에 따르면, 이방과는 "개국의 공로는 모두 정안군(이방원)에게 있는데 내가 어찌 세자가 될 수 있는가?"라며 완강히 거절했다.

 

하지만 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동생의 양보와 추대라는 형식으로 세자에 책봉된 지 한 달 만에 태조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 실권자 이방원과 이름뿐인 군주

 정종의 즉위는 곧 '이방원의 시대'가 열렸음을 의미했다. 정종의 재위 기간에 이루어진 주요 정책들은 대부분 실권자인 이방원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개경 천도(1399)
한양을 떠나 옛 수도인 개경으로 돌아간 것은, 제1차 왕자의 난에 상심하여 함흥 등지를 떠돌던 아버지 태조의 정치적 영향력과 한양에 가득한 피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이방원의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2차 왕자의 난(1400)
정종의 넷째 동생인 이방간이 박포와 함께 이방원의 권력에 도전했으나, 이방원은 이를 신속하게 진압했다. 이 사건은 이방원의 정치적 입지를 절대적으로 만들었고, 정종은 이 사건 직후 주저 없이 이방원을 세자로 책봉했다.


왕권 강화 개혁
정종의 재위 기간에 단행된 사병 혁파군정(軍政)과 정무(政務)의 분리(의정부-삼군부 체제)는 왕자의 난을 일으켰던 핵심 원인을 제거하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권을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는 명백히 다음 왕위를 계승할 이방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작업이었다.

# 조선왕조의 안정을 가져오다

 비록 실권은 없었지만, 정종의 역사적 역할은 결코 미미하지 않았다. 그는 피로 얼룩진 권력 투쟁의 시대에 스스로 징검다리가 되기를 택했다.


만약 그가 왕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려 했거나, 제2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간의 편에 서는 등 다른 정치적 선택을 했다면, 조선은 건국 초기에 또 다른 거대한 내전으로 붕괴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종은 시종일관 권력의 흐름을 인정하고 동생 이방원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의 이름으로 단행된 사병 혁파와 행정 개혁은, 결과적으로 태조 시대에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왕자와 공신들의 사적 군사력'이라는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태종이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닦을 수 있게 한 결정적인 조치였다. 즉, 정종은 자신의 왕좌를 다음 시대를 잇는 주춧돌로써 놓아줌으로, 역설적으로 왕조의 안정에 가장 크게 기여한 군주가 된 것이다.


 

 

정종은 즉위 2년 만에 동생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격구, 사냥, 온천욕 등을 즐기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고, 동생 태종의 극진한 우애 속에서 천수를 누렸다.


아버지 태조가 아들과의 갈등 속에서 고뇌하며 비극적인 말년을 보낸 것과 달리, 정종은 권력을 향한 욕심을 버리고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길을 택함으로써 자신과 왕조 모두를 지켜냈다. 그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으나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말년을 보낸 왕 중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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