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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메모장
흔히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먼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거북선의 가공할 전투력은 그 자체로 독립된 것이 아니었다. 거북선이 위대한 이유는, 그 자체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당시 주력함이었던 판옥선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 탄생한 전술적 걸작이라는 점을 이해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거북선은 판옥선의 개량형이었으며, 두 전함은 경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 적인 관계였다. 따라서 거북선의 구조와 성능을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서 그 모함인 판옥선의 설계와 특징을 먼저 살펴보거 이를 바탕으로 진화한 거북선의 성능을 비교하여 조선 수군 승리의 핵심을 다각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1. 조선 수군의 주력함, 판옥선판옥선은 1555년(명종 10년) 을묘왜변을 계기로, 기존의 주력함이던 맹선(猛船)의 한..
조선 역사상 가장 찬란한 과학 발전이 이뤄졌던 시기는 세종의 시대였다. 이 시기의 과학 발전은 단순한 학문적 성취를 넘어, 국가 경영의 근간을 바로 세우고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명확한 목적성을 가졌다. 특히 천문학 분야의 발전은 수도 한양을 기준으로 한 독자적인 역법 체계를 수립하는 중대한 과업과 직결되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과학 유산이 바로 혼천의(渾天儀)와 앙부일구(仰釜日晷) 이다. 혼천의가 국가 통치를 위한 정밀 과학의 정점이었다면, 앙부일구는 그 과학적 성과를 백성과 나누려 한 응용 과학의 백미이자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인 애민정신의 결정체였다. # 국가 주도의 과학 혁신세종 시대 과학 발전의 중심에는 서운관이 있었다. 천문, 지리, 역법 등을 관장했던 이 기관은 최고..
금속활자 인쇄술은 인류의 지식 보급과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혁신적인 기술이다. 목판 인쇄의 시간적·경제적 한계를 극복한 이 기술을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실용화한 국가는 바로 고려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는 서양의 구텐베르크보다 최소 78년 앞선 고려의 독창적인 기술력을 증명하는 결정적 유물이다. 고려의 금속활자는 우연한 발명품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필요와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기술력이 결합하여 탄생한 필연적 결과물이었다.# 금속활자가 발명될 수 있었던 기반고려의 금속활자 발명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이미 준비된 기술력과 절박한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그 배경을 자세히 알아보자 _준비된 기술들_인쇄 및 주조 기술세..
성곽(城郭)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된 방어 구조물이다. 한반도에서는 국가의 형성과 함께 성곽이 등장했으며, 시대의 흐름과 전쟁 양상의 변화에 따라 그 재료와 구조, 전략적 가치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왔다. 특히 한국의 성곽은 정형화된 형태를 고집하기보다 자연 지형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고려했으며, 이는 독자적인 축성 기술과 방어 체계를 낳는 기반이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 고유어로는 잣이라 불렸던 성곽의 역사를 흙과 돌, 그리고 나무를 다루는 기술의 변천사와 함께 알아볼 것이다. # 축조 재료와 공법으로 본 성곽의 유형 _토성과 토축성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가장 초기적인 형태다. 토성은 주로 판축 공법, 즉 나무틀 안에 흙을 켜켜이 넣고 단단히 다지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은 단순한 성곽 건축물이 아니다. 이는 18세기 조선의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여 왕의 정치 철학을 구현한 입체적인 계획도시다. 부친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본질은 낡은 정치 질서를 개혁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던 정조의 국가 경영 청사진이었다. 화성은 당대 최고의 과학 기술, 합리적인 도시 설계, 그리고 백성을 중심에 둔 애민(愛民) 정신이 완벽하게 결합된, 시대를 앞서간 도시 모델의 원형이다.# 수원화성을 계획하다화성 건설의 가장 핵심적인 동기는 정치적 목적이었다. 정조는 수도 한양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고, 왕이 직접 주도하는 국정 개혁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배후도시가 필요했다. _정치적 목적과 '제2의 수도' 구상정조는 ..
지난 글에서는 처마에 담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한국 전통 건축의 미학에는 자연미나 단아한 아름다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궁궐이나 사찰의 기둥, 서까래, 천장에서 마주하는 화려한 오방색의 향연, 단청(丹靑)은 한옥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단청이란 목조 건축의 주요 부재(部材)에 여러 색으로 무늬와 그림을 그려 장엄하게 장식하는 한국 고유의 채색 체계이다.그 안에는 그저 건물을 장식하기 위한 것만이 아닌 목조 건물을 한국의 혹독한 환경에서 보호하기 위한 목적과 장식을 통해 건물의 위계를 나타내고 행복을 염원함이 담겨있다. #단청의 정의와목적 단청의 한자뜻 그대로 해석을 한다면 붉은색과 푸른색이란 뜻이다. 목조 건축물에 여러가지 색으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
한옥의 지붕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그 끝에는 부드럽게 솟아오른 처마의 곡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처마의 역할은 이러한 심미적 기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려 했던 선조들의 '숨겨진 지혜', 즉 과학적 원리가 담겨 있다.오늘은 지난 대청마루에 이어 한옥의 지붕 끝 처마를 알아보려고 한다. #처마에 담긴 과학처마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태양의 고도를 계산하여 실내 일조량을 구조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이는 기계 장치 없이 기후 환경에 대응하는 현대 친환경 건축 기술, 패시브 솔라 디자인(Passive Solar Design)의 기본 원리와 정확히 일치하며, 자연의 순리를 건축에 적용한 선조들의 지혜를 보여준다. _기후 조절의 원리여름: 태양의 고도가..
# 마루란 공간에 대해서한옥이 온돌로 겨울의 추위를 다스렸다면, 마루를 통해 여름의 더위를 이겨냈다. 마루는 단순히 나무를 깐 바닥을 말한다. 그 이상으로 마루는 다양한 생활 행위를 담아내는 개방적 공간으로서 마루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옥에는 여러 종류의 마루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대청(大廳)마루와 툇마루(退抹樓)는이름은 비슷하지만 기능과 공간적 위계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이번 시간에는 이 두 가지의마루를 조사하려 한다. # 대청(大廳)마루대청마루는 큰 마루라는 뜻이다. 한옥의 가장 중심적인 공용 공간이다. 안방과 건넌방처럼 가장 중요한 두 방 사이에 자리 잡아, 집의 물리적·기능적 중심축을 형성한다. _대청마루의 구조위치와 배치: 대청마루는 일반적으로 안채의 안방과 건넌방 사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