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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증 조선시대 .ver [호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만 17세가 될 무렵 집으로 날아온 통지서 한 장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다. 1년 내에 발급받지 않으면 과태료까지 물어야 하는 이 의무적인 신분증 제도는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그 기원은 1968년 '1·21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한국군 복장을 하고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자하문(창의문)까지 잠입한 사건이 있었다. 다행히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막아냈지만, 이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고 신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전 국민에게 신분증을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반대 여론도 있었지만, 결국 「주민등록법」 개정안은 통과되었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거 .. 2025. 12. 20.
착호갑사_ 호랑이 잡는 특수부대 조선시대, 한반도는 호랑이가 깊은 산림은 물론 인가 근처까지 빈번하게 출몰하여 인명과 가축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이른바 호환이 끊이지 않는 땅이었다. 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호랑이가 인왕산과 백악산은 물론 궁궐에까지 나타났다고 하니 실제 피해는 실로 상상을 초월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조선 왕조는 호환에 전문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특수 목적의 군사 조직을 창설했으니, 그것이 바로 '호랑이를 잡는 갑사'라는 뜻의 착호갑사(捉虎甲士)이다. # 착호갑사 국가가 주도한 호랑이 사냥호환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가축 손실이 전국적으로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호랑이가 수도 한양과 궁궐 근처까지 출몰하여 왕실의 안전마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조선 왕조는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2025. 12. 7.
한국의 인장(圖章) 문화: 재료, 서체(전서체), 그리고 신분의 상징 한국의 인장 역사는 환웅이 환인으로부터 천부인 세 개를 받았다는 단군신화 혹은 단군고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오래되었다. 문자를 사용하고 기록하는 시점에 접어들면서 인장은 개인 간의 신뢰의 표식을 넘어 국가 통치 체제의 핵심적인 증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왕이 사용하는 국새부터 관료들의 관인, 일반 개인의 사인에 이르기까지, 인장은 그 종류와 형태, 재료, 서체를 통해 당시의 사회 질서와 계급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이 글은 한국의 인장 문화를 세 가지 핵심적인 축, 즉 신분의 상징으로서의 역할, 예술적 가치를 결정하는 재료와 서체를 중심으로 알아가고자 한다.# 신분과 권위의 상징_인장의 종류와 체계한국의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보인, 관인, 사인의 세 가지 체계로 명확.. 2025. 9. 15.
시조(時調)의 형식적 특징(3장 6구 45자 내외)과 주요 작가 연구 시조(時調)는 고려 후기에 형성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창작되고 있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定型詩)이다. 본래 ‘시절가(時節歌)’,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음악적 의미에서 출발한 시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문학 갈래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시조는 장구장단이나 무릎장단에 맞춰 부르는 노래(시조창)이자, 선비들의 정신 세계와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문학이자 문화였다. 시조는 엄격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대의 변화와 작가층의 확대에 따라 그 내용을 유연하게 담아내는 뛰어난 포용성을 보여주었다. 이 글은 먼저 시조가 가진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독특한 형식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어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시조의 역사를 이끌었던 주요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시조 .. 2025. 9. 14.
한국 전통 탈(Tal)의 지역별 특징과 탈춤의 사회 비판적 기능 탈은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본떠 얼굴에 쓰는 도구로, 세계 거의 모든 민족에게서 발견되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문화이다. 한국의 탈 역시 선사시대 유물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종교의식 속에서 신령이나 악귀를 쫓는 주술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탈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노래와 춤 그리고 연극이 결합된 예능의 형태로 발전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각 지역에서 탈놀이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당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고 지배 계층의 위선을 폭로하는 사회 비판의 장으로 기능했다. 탈을 통해 신분을 감춘 서민들은 놀이판 위에서만큼은 양반과 파계승을 마음껏 조롱하며 억눌렸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 글은 조선 시대 후기 유교의 엄격한 사회.. 2025. 9. 13.
종묘제례악의 음악적 구성과 절차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되던 음악이다. 기악, 악장(樂章), 일무(佾舞)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며 왕조의 정통성과 업적을 기리고 유교적 통치 이념을 소리와 몸짓으로 구현하는 장엄한 의식이었다. 고려시대의 제도를 일부 계승했으나, 조선의 건국이념과 독자적인 음악 문화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은 세종(世宗) 대에 이르러 신악의 창제로 이어졌다. 세종이 만든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 세조 대에 종묘제례악으로 공식 채택된 이후, 종묘제례악은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원형 그대로 전승되어 왔다. 그 독창성과 오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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