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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메모장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에서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이방원만큼 극적인 평가를 받는 군주는 드물다. 그는 아버지의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정적의 피를 손에 묻혔고, 형제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왕좌에 올랐다. 즉위 후에는 자신을 왕으로 만든 공신들과 처갓집 식구들마저 가차 없이 숙청했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잔인하리만큼 철저했던 권력 강화 과정은 조선 왕조의 가장 안정적인 통치 기반을 마련했고, 아들 세종이 열어갈 태평성대의 결정적인 초석이 되었다. # 건국의 일등공신, 그러나 잊힌 왕자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로, 조선 건국 과정에서 그 누구보다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이방원은 1383년(우왕 9) 문과에 급제한 학자 출신이었지만, 동시에 정치적 위기 앞에서 과감한..
조선 왕조의 계보에서 제2대 왕 정종(定宗, 재위 1398~1400)은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동생 태종 이방원이라는 거대한 두 봉우리 사이에 가려진,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군주이다. 기록 속 그는 왕위에 대한 욕심 없이 동생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격구( 말을 탄 상태로 숟가락 모양의 막대로 공을 쳐 승부를 내는 경기.)나 사냥을 즐기며 조용히 여생을 보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가 왕위에 머무른 짧은 2년은 그저 '과도기'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 왕좌를 탐하지 않았던 왕자 정종의 본명은 이방과로,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성품은 순하고 성실했으며, 무인으로서의 용맹함도 갖추고 있었다. 그는 고려 말부터 아버지를 따라 왜구 토벌에 나서는 등 충실한 아들이자 장수였지만..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 500년의 기틀을 닦은 위대한 창업 군주, 태조 이성계. 그는 낡은 시대를 종식시키고 새 나라의 청사진을 그린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500년 왕조를 설계한 그 위대한 창업 군주는, 아이러니하게도 한 가정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비극적인 아버지였다. 이 글은 한 인물의 공적인 성공과 사적인 실패라는 두 얼굴을 통해, 조선 건국의 빛과 그림자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새 왕조의 기틀을 세우다이성계의 '성공' 서사는 고려의 영웅에서 조선의 설계자로 거듭나는 역동적인 과정 그 자체였다. 그는 혼란의 시대에 스스로 시대의 구심점이 되어 새 질서를 창조했다._고려의 영웅에서 왕조의 설계자로동북면의 신흥 무장 세력으로 출발한 이성계는 고려를 침략한 홍건적과 왜구를 연이어 격퇴하며 ..
한국의 인장 역사는 환웅이 환인으로부터 천부인 세 개를 받았다는 단군신화 혹은 단군고사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오래되었다. 문자를 사용하고 기록하는 시점에 접어들면서 인장은 개인 간의 신뢰의 표식을 넘어 국가 통치 체제의 핵심적인 증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왕이 사용하는 국새부터 관료들의 관인, 일반 개인의 사인에 이르기까지, 인장은 그 종류와 형태, 재료, 서체를 통해 당시의 사회 질서와 계급 구조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이 글은 한국의 인장 문화를 세 가지 핵심적인 축, 즉 신분의 상징으로서의 역할, 예술적 가치를 결정하는 재료와 서체를 중심으로 알아가고자 한다.# 신분과 권위의 상징_인장의 종류와 체계한국의 인장은 사용자의 신분에 따라 보인, 관인, 사인의 세 가지 체계로 명확..
시조(時調)는 고려 후기에 형성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창작되고 있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定型詩)이다. 본래 ‘시절가(時節歌)’,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음악적 의미에서 출발한 시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문학 갈래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시조는 장구장단이나 무릎장단에 맞춰 부르는 노래(시조창)이자, 선비들의 정신 세계와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문학이자 문화였다. 시조는 엄격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대의 변화와 작가층의 확대에 따라 그 내용을 유연하게 담아내는 뛰어난 포용성을 보여주었다. 이 글은 먼저 시조가 가진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독특한 형식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어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시조의 역사를 이끌었던 주요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시조 ..
탈은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모양을 본떠 얼굴에 쓰는 도구로, 세계 거의 모든 민족에게서 발견되는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문화이다. 한국의 탈 역시 선사시대 유물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처음에는 종교의식 속에서 신령이나 악귀를 쫓는 주술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탈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노래와 춤 그리고 연극이 결합된 예능의 형태로 발전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각 지역에서 탈놀이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당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고 지배 계층의 위선을 폭로하는 사회 비판의 장으로 기능했다. 탈을 통해 신분을 감춘 서민들은 놀이판 위에서만큼은 양반과 파계승을 마음껏 조롱하며 억눌렸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 글은 조선 시대 후기 유교의 엄격한 사회..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되던 음악이다. 기악, 악장(樂章), 일무(佾舞)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며 왕조의 정통성과 업적을 기리고 유교적 통치 이념을 소리와 몸짓으로 구현하는 장엄한 의식이었다. 고려시대의 제도를 일부 계승했으나, 조선의 건국이념과 독자적인 음악 문화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은 세종(世宗) 대에 이르러 신악의 창제로 이어졌다. 세종이 만든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 세조 대에 종묘제례악으로 공식 채택된 이후, 종묘제례악은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원형 그대로 전승되어 왔다. 그 독창성과 오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창자, 唱者)이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서사적인 이야기를 엮어내는 한국의 전통 공연 예술이다. 소리꾼은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唱, 소리), 아니리(말), 너름새(발림, 몸짓)라는 세 가지 요소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거대한 서사를 이끌어간다. 청중 또한 "얼씨구", "좋다"와 같은 추임새로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소리꾼과 함께 판을 완성해 나간다. 조선 후기 민중의 삶 속에서 태동한 판소리는 시대의 희로애락을 해학과 풍자로 담아내며 모든 계층이 사랑하는 예술로 발전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낸 판소리는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글은 판소리의 기원에 대한 여러 학설을 살펴보고, 현재까지 전승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