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창작메모장

종묘제례악의 음악적 구성과 절차 본문

전통/예술과 문화

종묘제례악의 음악적 구성과 절차

cocolivingdiary 2025. 9. 12. 22:00
반응형

종묘제례악
종묘_00145
출처 ( 종묘_00145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1073332&menuNo=200018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되던 음악이다. 기악, 악장(樂章), 일무(佾舞)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며 왕조의 정통성과 업적을 기리고 유교적 통치 이념을 소리와 몸짓으로 구현하는 장엄한 의식이었다. 고려시대의 제도를 일부 계승했으나, 조선의 건국이념과 독자적인 음악 문화를 담아내기 위한 노력은 세종(世宗) 대에 이르러 신악의 창제로 이어졌다. 세종이 만든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 세조 대에 종묘제례악으로 공식 채택된 이후, 종묘제례악은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원형 그대로 전승되어 왔다. 그 독창성과 오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글은 종묘제례악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그 음악적 구성과 제례 절차는 어떠한 특징을 갖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종묘제례악의 형성과 역사적 변천

오늘날의 종묘제례악이 정착하기까지는 약 70년에 걸친 오랜 논의와 창작, 개편의 과정이 있었다.

_우리 음악의 필요성

조선 건국 초기, 종묘 제사에는 고려시대의 제도를 따라 중국에서 유래한 아악(雅樂)과 당악(唐樂)을 사용했다. 그러나 세종은 이러한 상황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은 살아서 우리 음악(향악)을 듣다가 죽으면 중국 음악(아악)을 연주하니 어찌된 까닭인가"라고 하며, 조상들이 평소에 듣던 음악을 제례에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_보태평과 정대업의 탄생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세종은 직접 새로운 음악을 창제했다. 조선 왕조의 공덕과 건국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해 고취악(鼓吹樂)과 향악에 바탕을 둔 보태평(保太平)'정대업(定大業)을 만들었다. 1447년에 완성된 이 두 악곡은 처음에는 종묘 제례가 아닌 궁중의 잔치(회례연)에서 사용되었다. '보태평'은 11곡으로 구성되어 선대왕들의 문덕(文德)을 기리는 내용이었고, '정대업'은 15곡으로 무공(武功)을 칭송하는 내용이었다.

_세조의 채택과 완성

세종이 만든 음악은 한동안 궁중 잔치에서만 연주되다가, 세조 대에 이르러 종묘제례악으로 공식 채택되었다. 세조는 "세종께서 제정한 악무가 쓰이지 않으니 애석하다"며, 최항 등에게 명하여 제례 의식의 짧은 시간에 맞게 가사와 곡조를 다듬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보태평'과 '정대업'은 각각 11곡으로 정리되었고, 제례 절차에 필요했던 다른 악곡들이 추가되었다. 마침내 1464년(세조 10년), '보태평'과 '정대업'은 조선 왕조의 공식 종묘제례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인조 대(1626)에 선조의 업적을 기리는 '중광장(重光章)'이 추가된 것 외에는 큰 변화 없이 원형을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종묘제례악의 음악적 구성

종묘제례악은 악기 편성, 악곡, 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종합 예술이다. 그 음악적 구조는 장엄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한다.

_악단과 악기 편성

제례가 거행될 때 악단은 두 곳으로 나뉘어 배치된다. 섬돌 위 상월대에 위치하는 등가(登歌)와 뜰에 위치하는 헌가(軒架)가 그것이다. 이 두 악단은 제례 절차에 따라 번갈아 가며 음악을 연주한다.
악기 편성은 편종, 편경과 같은 타악기가 선율의 기둥을 이루고, 그 위에 당피리, 대금, 해금, 아쟁 등 관악기와 현악기가 장식적인 선율을 덧붙인다. 여기에 악장(樂章)을 부르는 가객(歌工)의 노래가 더해져 중층적인 소리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_보태평과 정대업

  • 보태평(保太平)
    조상들의 문덕을 찬양하는 음악으로, 음계는 황종(C)을 중심으로 하는 평조이다. 비교적 평화롭고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례 절차 중 영신, 전폐, 초헌례에서 연주된다.
  • 정대업(定大業) 조상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음악으로, 음계는 계면조를 바탕으로 한다. 웅장하고 힘 있는 분위기가 특징이다. 아헌례와 종헌례에서 연주된다.

이 두 악곡은 세종 창제 당시와 세조 때의 음계 구성에 차이가 있으며, 선율 구조는 타악기가 중심 선율을 잡고 다른 악기들이 장식적으로 선율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제례의 절차와 악무

종묘제례악은 엄격한 제례 절차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연주된다. 각 절차마다 그 의미에 맞는 음악과 춤이 동원된다.

_제례 절차와 음악

종묘제례는 신을 맞이하는 영신(迎神)으로 시작하여, 예물을 올리는 전폐, 음식을 올리는 진찬, 세 번에 걸쳐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아헌례·종헌례, 음식을 거두는 철변두, 그리고 신을 보내드리는 송신(送神)의 순서로 진행된다

  • 영신, 전폐, 초헌례
    보태평 계열의 음악이 연주된다. (예: 영신희문, 전폐희문)
  • 아헌례, 종헌례
    정대업 계열의 음악이 연주된다.
  • 진찬, 철변두, 송신
    진찬악 계열의 음악이 연주된다.

_일무(佾舞)

일무는 본래 36명이 추는 육일무(六佾舞)였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기, 황제의 격에 맞추어 64명이 추는 팔일무(八佾舞)로 격상되었다. 현재는 무원의 교체 없이 의장물만 바꾸어 문무와 무무를 표현하며, 과거 무무를 출 때 함께 섰던 의물 도열은 생략되었다."

  • 문무(文舞)
    선대왕들의 문덕을 기리는 춤으로, '보태평'이 연주되는 영신, 전폐, 초헌례에서 춘다. 무원들은 왼손에 구멍 뚫린 관악기인 약(蘥)을, 오른손에 꿩 깃털로 장식한 적(翟)을 들고 춘다.
  • 무무(武舞)
    선대왕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춤으로, '정대업'이 연주되는 아헌례, 종헌례에서 춘다. 본래 창, 칼 등을 들고 추었으나 현재 무원들은 나무로 만든 칼(목검)과 창(목창)을 들고 힘 있는 동작을 보여준다.

종묘제례악은 조선 왕조의 건국이념과 통치 철학이 담긴 종합 예술이다. 세종의 주체적인 음악 창제 정신과 세조의 실용적인 개편을 거쳐 완성된 이 제례악은,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절되지 않고 거의 원형 그대로 전승되어 온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음악과 노래, 춤이 제례라는 엄숙한 의식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종묘제례악은, 조선의 국가적 이상과 예술적 성취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 장엄하고 정제된 소리와 몸짓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간을 초월한 울림을 전하며,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