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메모장
시조(時調)의 형식적 특징(3장 6구 45자 내외)과 주요 작가 연구 본문

시조(時調)는 고려 후기에 형성되어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창작되고 있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定型詩)이다. 본래 ‘시절가(時節歌)’,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음악적 의미에서 출발한 시조는, 시간이 흐르면서 문학 갈래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시조는 장구장단이나 무릎장단에 맞춰 부르는 노래(시조창)이자, 선비들의 정신 세계와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문학이자 문화였다. 시조는 엄격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대의 변화와 작가층의 확대에 따라 그 내용을 유연하게 담아내는 뛰어난 포용성을 보여주었다. 이 글은 먼저 시조가 가진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독특한 형식적 특징을 분석하고, 이어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시조의 역사를 이끌었던 주요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시조 문학의 흐름을 알아보고자 한다.
# 시조의 형식적 특징
시조는 형식과 운율이 정해져 있는 시로, 그 구조는 장(章)의 구성, 음보율, 그리고 종장의 독특한 규칙에서 그 특징이 드러난다.
_기본 구조
시조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평시조(平時調)이며, 그 형식은 다음과 같은 틀을 가진다.
- 3장(章)
초장(初章), 중장(中章), 종장(終章)의 세 줄로 구성된다. - 6구(句)
각 장은 두 개의 구로 이루어져, 총 여섯 구를 가진다. - 4음보(音步)
각 장은 네 번 끊어 읽는 마디, 즉 4음보의 율격을 가진다. - 45자 내외
전체 글자 수는 대략 45자 안팎으로 형성된다.
이를 음절 수(자수율)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은 기본형을 상정할 수 있다.
| 구분 | 구(句) 구성 | 음보(音步)와 자수(字數) |
|---|---|---|
| 초장(初章) | 제1구, 제2구 | 3·4 / 4·4 |
| 중장(中章) | 제3구, 제4구 | 3·4 / 4·4 |
| 종장(終章) | 제5구, 제6구 | 3·5 / 4·3 |
이러한 음절 수는 절대적인 규칙은 아니며, 우리말의 특성에 따라 한두 음절의 가감이 허용된다.하지만 이 틀은 시조의 정형시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_종장의 제약과 미학적 기능
시조 형식의 백미는 종장(終章)에 있다. 종장은 다른 장과 달리 엄격한 음절 수의 제약을 받는다.
- 첫 구(첫 음보)
반드시 3음절로 고정된다. - 둘째 구(둘째 음보)
반드시 5음절 이상이어야 한다.
종장의 첫 구를 ‘어즈버’, ‘아희야’와 같은 감탄사로 시작하여 3음절로 압축하는 것은 시상을 집약하고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이어 둘째 구를 5음절 이상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것은 평탄하게 흘러오던 시의 흐름에 변화를 주어 감정의 고조나 반전을 꾀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종장의 형식적 제약은 시조가 단조로움을 피하고, 독특한 시적 긴장감과 안정적인 종결미를 갖게 하는 핵심적인 장치이다.
_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시조는 기본 형식인 평시조에만 머무르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길이를 확장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 평시조(平時調)
위에서 설명한 3장 6구의 기본 형식을 지닌 단형(短型) 시조이다. - 엇시조(旕時調)
중형(中型) 시조로, 초장이나 중장 중 어느 한 구가 평시조보다 길어진 형태이다. - 사설시조(辭說時調)
장형(長型) 시조로, 두 구 이상이 평시조보다 대폭 길어진 형태이다. 주로 중장이 제한 없이 길어지며, 산문적인 서술과 일상적인 언어를 통해 해학과 풍자를 담아낸다. 이는 조선 후기 서민 의식의 성장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 주요 작가와 작품 세계
시조는 작가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과 그들의 신념을 담아내는 그릇이었다.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시조가 어떻게 시대정신을 반영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_고려 말 ~ 조선 초
시조가 문학 양식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고려 말에서 조선 초는 왕조 교체라는 거대한 역사적 격변기였다. 이 시기의 시조는 주로 당대의 정치적 갈등과 지식인들의 고뇌에 대한 시조가 많았다.
- 정몽주(鄭夢周)_ 「단심가(丹心歌)」
그의 「단심가(丹心歌)」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며 고려 왕조에 대한 변치 않는 충절을 노래했다. 이는 망해가는 왕조에 대한 신하의 굳은 절의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남았다. - 이방원(李芳遠)_ 「하여가(何如歌)」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은 정몽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라며 새로운 왕조에 함께할 것을 권유하는 「하여가(何如歌)」를 읊었다. 「단심가」와 「하여가」는 시조가 치열한 정치적 논쟁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 길재(吉再)_ 「오백년 도읍지를」
조선 건국 후 벼슬을 거부하고 은거한 길재는 「오백년 도읍지를」이라는 회고가(懷古歌)를 통해, 폐허가 된 고려의 옛 수도를 보며 느끼는 인생무상과 멸망한 왕조에 대한 비탄을 노래했다.
_조선 전기
16세기 조선에서는 연산군 시대부터 이어진 사화(士禍)와 당쟁(黨爭)으로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에 일부 사대부들은 벼슬길을 단념하고 자연에 은거했으며, 관직 생활을 마친 이들 또한 고향에 물러나 한적한 삶을 추구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세조 때 사유화된 토지라는 경제적 기반과, 자연을 통해 도(道)를 수양한다는 도학(道學)적 사상이 있었기에 가능다. 이처럼 자연을 유교적 이념을 실천하는 이상적 공간으로 삼아 그 안에서의 정신세계를 노래한 것을 강호가도(江湖歌道)라 하며, 이는 당시 시조 문학의 가장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 이황(李滉)과 이이(李珥)
성리학을 대표하는 두명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유교적 이념을 발견하고 학문 수양의 도리를 찾는 것을 시조의 주제로 삼았다.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과 이이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가 강호시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_조선 중기
16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시조의 주제는 더욱 다양해졌다.
- 윤선도(尹善道)_「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윤선도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섬세한게 그려내는 데 독보적인 재능을 보인 작가였다. 그의 대표작인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에서 그 절정을 보여주는데 사계절의 변화에 따른 어촌의 풍경과 어부의 한가로운 생활을 40수의 연시조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노래한 시조 문학사의 정수로 꼽힙다. - 정철(鄭澈)_「훈민가(訓民歌)」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며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훈민가(訓民歌)」는 부모에 대한 효, 형제간의 우애 등 유교적 윤리 덕목을 쉬운 우리말로 풀어낸 교훈적 시조이다. - 황진이(黃眞伊)_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기녀였던 황진이의 등장은 시조 작가층의 확대를 의미했다. 그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와 같은 작품을 통해, 사대부들의 관념적인 시 세계에서 벗어나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참신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표현하여 시조의 서정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조선 후기
18세기에 이르면 상업이 발달하고 도시 문화가 형성되면서, 시조는 사대부의 전유물을 넘어 전문 예술가들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 김천택(金天澤)_『청구영언(靑丘永言)』
그는 시조를 노래하는 가객(歌客)으로서, 시조사에 매우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이전까지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시조들을 수집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최초의 시조집인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편찬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수많은 고시조가 소실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이 시기에는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남녀 간의 애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설시조가 유행하는 등, 서민들의 목소리가 문학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조는 '3장 6구 45자 내외'라는 간결한 형식 안에 시대의 정신을 담아온 문학적 그릇이었다. 고려 말 왕조 교체기의 충절과 고뇌를 노래하며 태어났고, 조선 전기에는 자연 속에서 이상을 찾으려 했던 사대부들의 철학을 담았다. 시대가 흐르면서는 백성을 가르치는 교훈이 되고,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했으며, 마침내 전문 가객과 서민들의 현실적인 목소리까지 품게 되었다.
이처럼 엄격한 정형 속에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확장하며 각계각층의 삶과 정신을 반영해 온 유연함이야말로, 시조가 오랫 동안 생명력을 잃지 않고 한국 문학의근간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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