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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의 돔 구조 건축 기법과 항습(습도 조절)의 비밀 본문

전통/기술

석굴암의 돔 구조 건축 기법과 항습(습도 조절)의 비밀

cocolivingdiary 2025. 8. 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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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84103&division=img#

신라 불교예술의 황금기에 탄생한 석굴암은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에 의해 짓기 시작하여 774년(혜공왕 10년)에 완성된 되었다. 이 인공 석굴은 토함산 중턱의 화강암을 깎고 다듬어 완벽한 불국토를 구현했다. 현존하는 38구의 불상들은 최고의 예술품으로 평가받지만, 석굴암의 건축적 설계 또한 그에 버금가는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수백 개의 돌을 쌓아 완벽한 원형을 이룬 반구형 구조와 천 년 넘게 내부를 온전하게 지켜낸 자연 습도 조절 능력이다. 이 두가지를 통해 석굴암에 숨겨진 두가지 건축의 비밀을 알아보려 한다.

 

#석굴암 원형 주실

석굴암 건축의 백미는 주실의 천장을 덮고 있는 원형 돔 구조다. 인도의 석굴 사원이 대부분 자연 암반을 파서 만든 것과 달리, 석굴암은 잘 다듬은 수백 개의 화강암 부재를 인위적으로 조립하여 만든 인공 석굴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돔의 구조와 건축 기법 석굴암의 주실 천장은 360여 개의 넓적한 돌을 원형으로 쌓아 올려 완성되었다. 이는 아래에서부터 둥근 벽을 이루는 판석들을 점차 안쪽으로 기울게 쌓아 올리다가, 마지막에 거대한 천개석(天蓋石), 즉 쐐기돌 역할을 하는 덮개돌을 올려 마무리하는 고도의 공법이다. 접착제나 시멘트 없이 오직 돌의 무게와 중력, 정확한 각도 계산만으로 완벽한 반구형의 구조적 안정을 이룬 것이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로마의 판테온처럼 콘크리트를 사용하거나 이글루처럼 나선형으로 쌓아 올린 구조와는 전혀 다른, 세계 건축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신라만의 독창적인 기술이다. 『삼국유사』에는 이 돔의 마지막 천개석을 올리려 할 때 돌이 세 조각으로 갈라졌으나, 천신(天神)이 내려와 다시 붙여놓았다는 전설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돔의 완성이 얼마나 어렵고 기적적인 과업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석굴암의 돔은 신라인들이 기하학과 수리, 구조 역학에 얼마나 깊은 이해를 가졌는지를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다.

#자연적인 습기 조절 기능

석굴암의 또 다른 위대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바로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부의 결로를 막고 일정한 습도를 유지했던 자연적인 습도 조절 기능이다. 이 비밀은 역설적으로 20세기 초 일제의 졸속적인 보수 공사에 의해 파괴되면서 그 존재가 증명되었다.

 

_문제의 발단

  • 근대적 수리와 시멘트의 비극
    1912년경, 석굴암은 천장 일부가 무너져 내리는 등 훼손이 심각한 상태였다. 이에 일제 총독부는 1913년부터 1915년까지 석굴암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대규모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문제는 이때 구조를 보강한다는 명목으로 석굴의 외부를 두꺼운 콘크리트로 완전히 감싸버린 것이다. 당시로서는 최신 공법였지만 석굴암에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원래 화강암 사이의 미세한 틈으로 공기가 순환하고 습기가 배출되던 '숨 쉬는 구조'가, 콘크리트로 밀봉되면서 하나의 응결된 콘크리트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이로 인해 석굴암은 스스로 습도를 조절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공사 완료 후 2년도 되지 않아 심각한 누구와 결로 현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석굴 내부 벽면에는 이끼가 끼고 조각상들은 빠르게 침식되었다.
  • 파괴를 통해 증명된 독창성
    일제의 보수 실패는, 역설적으로 신라인들이 구축한 원래의 항습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고 과학적이었는지를 증명한다. 제공된 자료에는 그 구체적인 원리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콘크리트 밀봉이 습기 문제를 야기했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추론할 수 있었다. 신라인들이 화강암이라는 재료의 특성과 토함산의 자연환경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그들은 인공적인 밀봉이 아니라, 돌과 흙 사이의 자연스러운 통풍과 굴 아래로 흐르는 지하수를 이용한 냉각 시스템을 통해 굴 내부의 온도를 외부보다 항상 낮게 유지했을 것이다. 차가운 암반과 지하수가 내부 공기를 식혀주면, 더운 외부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이슬점 이하로 떨어지지 않아 결로가 생기지 않고, 자연적인 공기 순환을 통해 습기가 배출되는 원리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화학적인 접착제 없이 자연 재료만으로 구축한 숨 쉬는 구조야말로 신라 자동 습도 유지 기술의 핵심 비밀이었다.

한번 파괴된 자연 순환 시스템은 복원될 수 없었다. 1960년대, 대한민국 정부는 석굴암을 다시 보수하면서 이 습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했다. 결국 선택한 방법은 굴을 외부 공기와 완전히 차단하고, 2중 돔을 설치한 뒤 그 사이에 냉각 장치를 가동하여 인위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것이었다. 1976년부터 내부를 유리벽으로 막아 관람객의 호흡이 내부에 영향을 주는 것까지 차단한 것은, 우리가 신라인들의 지혜를 잃어버렸음을 인정하는 상징적인 조치였다.

 

석굴암은 눈에 보이는 예술적 성취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과학적 지혜가 위대한 건축물이다. 완벽한 기하학적 계산으로 축조된 석조 돔은 신라 건축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며, 비극적인 파괴를 통해 그 존재가 증명된 자연 항습 시스템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심오한 과학 철학을 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유리벽을 통해 마주하는 석굴암은 찬란한 신라 예술의 정수이자, 한때 존재했던 위대한 과학적 지혜가 사라진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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