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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기원과 5대 마당(춘향가, 심청가 등)의 서사 구조 본문

전통/예술과 문화

판소리의 기원과 5대 마당(춘향가, 심청가 등)의 서사 구조

cocolivingdiary 2025. 9. 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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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도첩/판소리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68972&division=img#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창자, 唱者)이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서사적인 이야기를 엮어내는 한국의 전통 공연 예술이다. 소리꾼은 단순히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창(唱, 소리), 아니리(말), 너름새(발림, 몸짓)라는 세 가지 요소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거대한 서사를 이끌어간다. 청중 또한 "얼씨구", "좋다"와 같은 추임새로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소리꾼과 함께 판을 완성해 나간다. 조선 후기 민중의 삶 속에서 태동한 판소리는 시대의 희로애락을 해학과 풍자로 담아내며 모든 계층이 사랑하는 예술로 발전했다. 한국인의 정서를 담아낸 판소리는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받아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글은 판소리의 기원에 대한 여러 학설을 살펴보고, 현재까지 전승되는 다섯 마당의 서사 구조와 그 안에 담긴 주제 의식을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 판소리의 기원과 형성

판소리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단일 기록은 없다. 그러나 여러 문헌과 연구를 통해 그 기원과 발전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_등장 시기와 명칭

판소리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헌 기록은 1754년(영조 30년) 유진한이 쓴 한시 「춘향가」이다. 이를 근거로 학계에서는 판소리가 늦어도 조선 숙종(1674~1720) 대에는 형성되어, 영조 대에 이르러 널리 향유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판소리'라는 명칭은 '판'과 '소리'가 결합된 말이다. '소리'는 한국의 민속 성악을 의미하며, '판'은 '씨름판', '놀이판'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 특정 행위가 벌어지는 '공간'과, 완결된 이야기 한 편을 의미하는 '한 판'의 뜻을 모두 포함한다.

_기원에 대한 여러 학설

판소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하며, 그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서사무가(敍事巫歌) 기원설

가장 유력한 학설로, 호남 지역 무당들이 굿판에서 부르던 긴 이야기 형식의 노래, 즉 서사무가에서 판소리가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 서사무가와 판소리의 강한 연관성
  • 창(노래)과 아니리(말)가 교차되는 형식,
  • 육자배기토리를 기반으로 한 판소리의 특징적인 애절한 가락인 계면조의 선율,
  • 슬픈 감정을 중심으로 하는 정서 등

광대소리 기원설

여러 놀이판을 돌며 공연하던 전문 예인 집단인 창우(倡優) 또는 광대들이 부르던 노래에서 발전했다는 설이다. 특히 이들이 연행하던 재담 중심의 희극적인 공연이 판소리의 해학적 요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

 

_발전과 정착

18세기에 형성된 판소리는 19세기 순조(1800~1834) 대에 이르러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권삼득, 송흥록 등 '전기 8 명창'이라 불리는 뛰어난 소리꾼들이 등장하여 경쟁적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리 대목인 '더늠'을 개발하면서 음악적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 시기 판소리는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외에도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판의 길이가 길어지고, 양반 계층까지 향유층이 확대되면서 내용에 변화가 생겼다. 자료에 따르면, 판소리 열두 마당 중 일부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 소재' 등의 이유로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전승되지 않았다. 그 대신 충, 효, 정절, 의리 등 조선 사회의 핵심적인 유교적 가치관을 담고 있으면서도 문학성과 음악성이 뛰어났던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다섯 마당이 집중적으로 가다듬어져 오늘날까지 전승되게 되었다.

# 판소리 5대 마당의 서사 구조와 주제

_춘향가(春香歌)

  • 서사 구조
    남원 퇴기 월매의 딸 춘향과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몽룡이 한양으로 떠난 뒤 새로 부임한 변학도의 수청 요구를 거부하다 옥에 갇힌다. 이후 과거에 급제하여 어사가 된 이몽룡이 춘향을 구해내고 사랑을 완성하는 구조이다.
  • 주제 
    표면적으로는 춘향의 정절을 주제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의 여성이 양반인 변학도의 부당한 권력에 맞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사랑할 권리를 주장하는 강력한 신분적 저항 의식이 담겨있다. 춘향의 승리는 단순한 사랑의 완성을 넘어, 봉건적 신분 질서의 해체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반영한다.
    주요 대목
    '사랑가', '이별가', '십장가', '옥중가', '어사출도' 등.

_심청가(沈淸歌)

  • 서사 구조
    눈먼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의 제물이 된 심청이, 용왕의 도움으로 환생하여 황후가 된다. 이후 맹인 잔치를 열어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아버지는 물론 온 세상 맹인들의 눈까지 뜨게 하는 이야기이다.
  • 주제
    핵심 주제는 효(孝)이다. 하지만 심청의 희생이 아버지 개인의 구원을 넘어 모든 맹인의 개안(開眼)으로 이어진다는 결말은, 한 개인의 희생을 통한 인간 구원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될 수 있다. 심청은 단순한 효녀를 넘어, 공동체의 비극을 해결하는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주요 대목
    '중타령', '범피중류', '화초타령', '추월만정' 등.

_흥보가(興甫歌), 흥부가

  • 서사 구조
    가난하지만 착한 아우 흥부는 제비 다리를 고쳐준 보답으로 부자가 되고, 욕심 많고 심술궂은 형 놀부는 이를 흉내 내다 제비에게 벌을 받아 몰락한다는 이야기이다.
  • 주제
    표면적인 주제는 권선징악과 형제간의 우애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화폐 경제가 발달하던 조선 후기,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놀보와 같은 신흥 부유층에 대한 비판과, 부의 정당한 분배에 대한 서민들의 고민이 담겨 있다. 놀보의 몰락은 단순한 징벌을 넘어, 비정상적인 부의 축적에 대한 공동체의 비판적 시선을 반영한다.
  • 주요 대목
    '놀보심술', '가난타령', '제비노정기', '흥보 박타령' 등.

_수궁가(水宮歌)

  • 서사 구조 
    병든 용왕을 살리기 위해 토끼의 간을 구하러 뭍으로 나온 별주부가 토끼를 꾀어 용궁으로 데려온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토끼가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는 기지를 발휘하여 용왕을 속이고 목숨을 구한다는 우화이다.
  • 주제
    별주부의 충성과 토끼의 지혜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다. 국가(용왕)를 위한 맹목적인 충성이 개인(토끼)의 희생을 강요할 때, 개인은 자신의 지혜와 기지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 이는 국가라는 거대 담론보다 개인의 생존과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고를 보여준다.
  • 주요 대목
    '약성가', '토끼화상', '고고천변', '범 내려온다' 등.

_적벽가(赤壁歌)

  • 서사 구조
    중국 소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 부분을 바탕으로 한다. 제갈공명의 지략으로 조조의 백만 대군이 대패하고, 조조가 화용도에서 관우에게 목숨을 구걸하여 겨우 살아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 주제
    원작인 『삼국지연의』가 영웅들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판소리 「적벽가」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 이름 없이 죽어가는 평범한 군사들의 고통과 애환을 부각한다. '군사설움타령'과 같은 대목을 통해 영웅들의 공명 뒤에 가려진 민중의 희생을 조명하며, 전쟁의 비극성과 허망함을 드러낸다. 이는 영웅 중심의 서사를 민중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독창적인 성취이다.
  • 주요 대목
    '삼고초려', '군사설움타령', '자룡 활 쏘는 대목', '새타령' 등.

 

판소리의 기원은 남도 지방의 무가와 전문 예인 집단의 소리에서 찾을 수 있듯이, 그 뿌리는 철저히 민중의 삶에 닿아있다. 처음에는 열두 마당의 다양한 이야기로 시작되었으나 다섯 마당으로 정착되었다. 이 다섯 편의 이야기는 충, 효, 정절과 같은 유교적 가치를 표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이면에는 신분제에 대한 저항, 부의 문제에 대한 비판,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성찰 등 당대 민중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현실 인식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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