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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의 비색(翡色)과 상감기법의 독창성 본문

전통/예술과 문화

고려청자의 비색(翡色)과 상감기법의 독창성

cocolivingdiary 2025. 9. 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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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
출처 :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86077&division=img#(공공누리_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_국가유산청 )

 고려청자는 고려시대의 문화적 취향과 당시 도자 기술의 성취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산물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자기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고려청자는 12~13세기에 이르러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며 절정에 달했다. 특히 다른 나라의 도자기와 구별되는 고려청자만의 독보적인 특징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신비로운 푸른빛을 띠는 유약의 색, 즉 비색(翡色)이며, 다른 하나는 흙으로 그림을 그리듯 정교한 문양을 새겨 넣는 상감(象嵌) 기법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고려인의 미의식과 창의성을 담고 있다. 비색을 구현하기 위한 과학적인 노력과, 상감이라는 독창적인 장식 기법의 완성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고려청자가 지닌 예술적, 기술적 가치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 비색(翡色)의 비밀

고려청자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바로 비취옥같이 맑고 푸른 유약의 색이다. 고려인 스스로 '비색'이라 불렀던 이 색은 당대 중국인들로부터 '천하제일'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_'비색'이란 무엇인가

비색은 단순히 푸른색이 아닌, 맑고 투명한 유약을 통해 은은하게 비쳐 나오는 녹청색을 의미한다. 1123년 고려를 방문했던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그의 저서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이라 하는데, 근래에 들어 제작 기술이 정교해져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라고 기록했다. 이는 12세기 초에 이미 고려가 비색을 안정적으로 구현해 냈음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의 기록인 『수중금(袖中錦)』에서도 '고려 비색이 천하제일'이라고 언급할 만큼, 고려청자의 색은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_비색을 만드는 기술적 조건

비색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태토, 유약, 그리고 번조(燔造, 그릇을 구워내는 과정)라는 세 가지 요소가 정교하게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었다.

  • 원료_철분을 함유한 흙과 유약
    청자의 몸체를 이루는 태토(胎土)는 철분을 2~3% 정도 함유한 점토를 사용했다. 유약은 식물의 재를 기본으로 하는 회유(灰釉) 계통의 석회유를 사용했는데, 여기에도 미량의 산화철(FeO)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려의 장인들은 불순물을 줄이기 위해 나뭇재를 가려 쓰고 석회석이나 조개껍질을 첨가하는 등 유약의 순도를 높이려 노력했다. 비색의 푸른빛은 바로 이 흙과 유약 속의 철분이 가마 속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나타나는 것이다.
  • 번조_두 번의 구움과 고온의 가마
    고려 초에는 그릇을 한 번만 구웠으나, 11세기경부터는 700~800℃에서 초벌구이를 한 뒤 유약을 입혀 1,200℃ 내외의 고온에서 다시 굽는 재벌구이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두 번에 걸친 번조 과정은 그릇의 완성도를 높이고 아름다운 유약 색을 얻기 위한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이는 1,200℃ 이상의 고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진흙 가마(토축요, 土築窯)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 핵심 기술_환원염 번조
    비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가마 안의 불꽃을 조절하는 환원염 번조 방식이다. 이는 가마 안의 산소 공급을 의도적으로 줄여 불완전 연소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유약에 포함된 산화철이 환원 반응을 일으키면 비취색과 같은 푸른빛을 띠게 된다. 만약 번조 과정에서 산소가 많이 공급되는 산화염 상태가 되면, 철분은 산화 반응을 일으켜 황색이나 갈색으로 변한다. 동일한 그릇이라도 일부는 비색, 일부는 갈색을 띠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만큼 환원염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이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 상감(象嵌) 기법의 독창성

비색이 고려청자의 바탕을 이루는 색의 아름다움이라면, 상감은 그 위에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을 더한 장식 기법의 정수이다. 이는 다른 공예 분야의 기술을 도자기에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고려만의 독창적인 성취였다.

_상감 기법이란 무엇인가

도자 상감 기법은 그릇 표면에 문양을 새겨 넣는 방식이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물레로 형태를 만든 그릇이 반쯤 말랐을 때, 칼로 원하는 문양을 음각으로 파낸다.
  2. 파낸 홈 안에 흰색 흙인 백토나 자토를 메워 넣는다.
  3. 표면을 매끄럽게 긁어내어 문양 이외의 부분에 묻은 흙을 제거한다.
  4. 초벌구이 후 투명한 청자 유약을 입혀 재벌구이를 한다.
    이렇게 완성된 상감청자는 맑은 비색 유약 아래로 선명한 흑백의 문양이 드러난다. 청자 위의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문양은 우아하면서 화려한 대비를 이루어 뛰어난 장식 효과를 낸다.

_상감기법의 연원과 독창성

상감이라는 기술 자체는 고려 도공들이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다. 바탕의 표면을 파내고 다른 재료를 채워 넣는 장식 기법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금속 공예의 입사(入絲) 기법이나 칠기 공예의 나전(螺鈿) 기법 등으로 존재했다. 금속 표면에 금선이나 은선을 박아 넣거나, 옻칠한 나무에 자개를 붙이는 방식이 그것이다. 고려청자 상감기법의 독창성은, 성질이 전혀 다른 공예 기술을 '흙'이라는 재료에 성공적으로 적용했다는 데 있다. 몸체가 되는 흙과 문양을 채우는 흙은 건조되고 구워지는 과정에서 수축률이 다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문양이 떨어져 나가거나 그릇 전체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고려의 장인들은 수많은 실험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흙과 흙을 완벽하게 결합시키는 고도의 기술을 완성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고려만이 이룩한 독창적인 성취였다.

 

 

고려청자는 중국의 선진 기술을 수용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독창적인 예술 감각을 통해 자신만의 미학을 완성했다. 비색은 좋은 원료를 선별하고, 두 번의 번조와 고온의 가마를 제어하며, 특히 다루기 힘든 환원염 번조 기법을 완벽하게 통제해 낸 기술적 성취의 정점이었다. 상감 기법은 다른 공예 분야의 장식 원리를 도자기에 창의적으로 접목시켜, 세계 도자 역사상 유례없는 독창적인 장식 양식을 만들어낸 예술적 창의성의 발현이었다. 이처럼 기술과 예술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비색과 상감청자는 고려시대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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