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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건축

단청

cocolivingdiary 2025. 8. 1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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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인지문 단청
출처 :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72956&division=img#

지난 글에서는 처마에 담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한국 전통 건축의 미학에는 자연미나 단아한 아름다움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궁궐이나 사찰의 기둥, 서까래, 천장에서 마주하는 화려한 오방색의 향연, 단청(丹靑)은 한옥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단청이란 목조 건축의 주요 부재(部材)에 여러 색으로 무늬와 그림을 그려 장엄하게 장식하는 한국 고유의 채색 체계이다.

그 안에는 그저 건물을 장식하기 위한 것만이 아닌 목조 건물을 한국의 혹독한 환경에서 보호하기 위한 목적과 장식을 통해 건물의 위계를 나타내고 행복을 염원함이 담겨있다. 

 

#단청의 정의와목적

단청의 한자뜻 그대로 해석을 한다면 붉은색과 푸른색이란 뜻이다. 목조 건축물에 여러가지 색으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위의 글대로 단청에는 크게 세가지 목적이 있다

  • 기능적 목적 (목재 보호): 나무 기둥이나 서까래가 비바람이나 햇빛에 의해 썩거나 갈라지는 것을 막고, 해충으로부터 목재를 보호하는 방부(防腐) 및 방충(防蟲) 기능을 수행한다.
  • 미학적 목적 (건축 장식): 건물의 미관을 돋보이게 하고, 목재의 거친 표면을 감추어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장엄한 느낌을 준다.
  • 상징적 목적 (위계와 권위): 단청의 문양과 색상은 건물의 격식과 위계를 나타내는 상징적 역할을 합니다. 궁궐, 사찰 등 중요한 건물에 사용하여 그 권위와 신성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단청의 재료

 

_색상별 주요 전통 안료

   _청색 계열

  • 석청 (石靑)
    • 원료: 탄산구리를 주성분으로 하는 남동석(藍銅石)이라는 광물.
    • 특징: 깊고 선명한 군청색을 내는 고급 안료. 입자의 크기에 따라 색의 농담이 달라지며, 한국에서는 양질의 원석이 귀해 매우 귀중하게 취급되었다.
  • 뇌록 (磊綠)
    • 원료: 녹색을 띠는 점토질 암석인 해록석(海綠石) 계열의 광물.
    • 특징: 채도가 낮은 차분한 녹색 또는 청록색. 단청의 바탕색(가칠)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었으며, 다른 색과 조화를 잘 이루고 목재 방부 기능이 뛰어나다.

   _적색 계열

  • 주사 (朱砂)
    • 원료: 황화수은이 주성분인 광물 진사(辰砂).
    • 특징: 단청(丹靑)의 '단(丹)'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붉은색. 선명하고 맑은 주홍빛을 내지만, 수은 화합물이라 독성이 있고 매우 귀한 안료였다.
  • 석간주 (石間硃)
    • 원료: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하는 적철석(赤鐵石) 또는 붉은 흙.
    • 특징: 채도가 낮은 적갈색. 생산량이 풍부하고 내구성이 매우 뛰어나 단청의 기둥이나 바탕칠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목재의 부식을 막는 효과가 탁월하다.

   _황색 계열

  • 자황 (雌黃)
    • 원료: 비소 황화물 광물인 석웅황(石雄黃).
    • 특징: 선명하고 밝은 노란색으로 '임금의 색'이라 불릴 만큼 화려하다. 독성이 강하고 빛에 약한 단점이 있으나, 다른 색과 섞었을 때 발색이 뛰어나 고급 단청에 사용되었다.

   _백색 계열 

  • 호분 (胡粉)
    • 원료: 굴 껍데기를 빻아 만든 탄산칼슘.
    • 특징: 오랜 시간 자연 풍화시킨 굴 껍데기를 곱게 갈아 물에 여러 번 씻어내는 '수비(水飛)' 과정을 거쳐 만듦. 따뜻하고 부드러운 백색을 내며, 접착력이 우수하다.
  • 백토 (白土)
    • 원료: 고령토라는 백색 점토.
    • 특징: 호분보다 구하기 쉬워 널리 사용되었으나, 순백색보다는 약간의 미색을 띈다.

_흑색 계열 

  • 먹 (墨)
    • 원료: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모아 아교와 반죽하여 만든다.
    • 특징: 탄소가 주성분으로, 빛에 매우 안정적이어서 변색이 거의 없다. 단청의 윤곽선을 그리고(긋기단청), 문양의 세부를 묘사하는 데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_교착제 및 용매 

  • 아교
    • 원료: 소의 가죽이나 뼈, 힘줄 등을 물과 함께 끓여 콜라겐을 추출, 건조시켜 만든다.
    • 역할: 가루 형태인 안료를 목재 표면에 단단하게 고착시키는 핵심적인 접착제. 물에 녹여 따뜻하게 중탕한 상태로 안료와 섞어 사용함. 접착력과 내구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
  • 물 
    • 역할: 아교를 녹이고, 아교와 섞인 안료의 농도를 조절하는 용매로 사용됨.

단청에 사용되는 재료는 색의 재료인 안료와 이를 목재에 부착시키는 교착제 그리고 그 둘을 혼합하여 사용하기 좋게 만드는 물로 구성되어있다. 안료는 자연에서 채취하였으며 오랜 세월에도 변색이 적고 목재를 보호하는 기능이 뛰어난 광물성 안료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하지만 19세기부터 화학 합성으로 만들어진 무기 안료가 국내에 유입이 되었다. 화학 안료는 천연 안료보다 값도 싸고 채색이 힘들지 않고 쉬웠다. 하지만 화려하고 강렬한 색은 전통 채색의 정체성을 훼손하였지만 현재는  전통 안료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과학적 연구를 통해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색과 문양에 담긴 의미

_오방색(五方色)의 상징적 의미

단청의 화려한 색채는 음양오행 사상에 뿌리를 둔 오방정색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각 방향과 계절 그리고 오행을 상징하는 다섯 가지 색을 의미한다. 

 

  • 청(靑): 동쪽, 봄, 나무(木)를 상징하며 만물의 탄생과 생명력을 의미한다.
  • 적(赤): 남쪽, 여름, 불(火)을 상징하며 생성과 번영, 강력한 양(陽)의 기운을 나타낸다. 악귀를 쫓는 벽사(辟邪)의 의미도 강하다.
  • 황(黃): 중앙, 흙(土)을 상징하며 우주의 중심이자 황제와 같은 가장 고귀한 권위를 나타낸다.
  • 백(白): 서쪽, 가을, 쇠(金)를 상징하며 결실과 순결, 진실을 의미한다.
  • 흑(黑): 북쪽, 겨울, 물(水)을 상징하며 지혜와 본질을 나타낸다.

 

※ 오간색(五間色): 이 다섯 가지 오방정색을 서로 섞어 만든 녹색, 벽색, 홍색, 유황색, 자색 등의 중간색을 '오간색'이라 하며, 오방색과 함께 사용하여 다채로운 단청을 구성했다.

 

_단청의 문양과 종류

단청의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그 당시 사람들의 염원과 신념, 세계관이 담겨있다. 단청 문양은 그 형태와 의미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눌 수 있으며, 각 유형은 건물의 성격과 위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되었다.

 

   _기하학문

기하학문은 단청의 가장 바탕이 되는 질서를 형성하며, 주로 금단청과 같이 화려한 단청에서 부재의 전체 면을 채우는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 그물문 (網紋):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패턴을 통해 연속성과 영속성을 상징한다.
  • 귀갑문 (龜甲紋): 거북이 등껍질 형태인 육각형 문양으로, 십장생의 하나인 거북이를 상징하여 장수와 견고함을 의미한다.
  • 뇌문 (雷紋): 번개를 도안화한 '卍' 또는 '回'자 형태의 문양으로, 강력한 힘으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고 있다.

   _식물문

식물 문양은 단청에서 가장 다채롭게 사용되며, 각각의 식물이 가진 생태적 특성과 문화적 상징이 결합되어 있다.

  • 연화문 (蓮花紋): 사찰 단청의 가장 핵심적인 문양이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속성 때문에 불교에서 깨달음, 순결, 그리고 극락정토를 상징한다. 부처가 앉아있는 대좌가 연꽃이며, 사찰의 중심 법당은 연꽃 문양으로 장엄하여 그곳이 곧 부처의 세계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 모란문 (牡丹紋): 크고 화려한 꽃의 모습 때문에 '꽃의 왕'이라 불리며,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주로 왕의 권위와 부귀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 건축이나 왕실 관련 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다.
  • 석류문 (石榴紋): 과일 속에 수많은 씨앗을 품고 있는 모습에서 다산과 자손의 번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길상 문양이다.
  • 사군자 (四君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일컫는 사군자는 선비의 고결한 덕과 지조를 상징한다. 유교적 이념이 중요한 서원이나 사대부 가옥 건축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_동물문

상상 속의 동물과 실존 동물을 포함하며, 강력한 상징성으로 건물의 위계와 성격을 규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용문 (龍紋): 왕권의 절대적인 상징. 용은 상상 속 동물 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비와 바람을 다스리고 악을 물리치며 나라를 수호한다고 믿어졌다. 때문에 용 문양, 특히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은 오직 왕만이 사용할 수 있었으며, 경복궁 근정전 천장의 황룡처럼 궁궐의 가장 중심적인 공간에 그려져 왕의 권위를 시각화했다.
  • 봉황문 (鳳凰紋): 성군이 나타나 세상이 태평할 때 출현한다는 상서로운 상상의 새로, 왕비 또는 태평성대를 상징한다. 용과 함께 궁궐 건축을 장식하는 최고 등급의 문양이었다.
  • 기린문 (麒麟紋): 어질고 덕이 높은 성인(聖人)의 탄생을 예고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봉황과 마찬가지로 길상의 의미를 가진다.
  • 십장생 (十長生):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 영원불멸을 상징하는 10가지 자연물을 그린 것으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염원하는 도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대표적인 문양이다.

   _별지화 

머리초와 같은 규격화된 문양이 아닌, 부재의 중앙부나 벽과 같이 넓은 면에 독립적으로 그려지는 회화 형식의 그림이다.

  • 역할: 건물의 성격에 맞춰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상징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 종류:
    • 불교 설화: 사찰에서는 부처의 전생 이야기(본생담), 일대기, 제자들의 이야기 등을 그려 신자들에게 교리를 전달했다.
    • 산수화 및 신선도: 도교적 색채가 강한 건물에는 신선이 사는 이상향의 풍경이나 신선들의 모습을 그려 장수와 탈속(脫俗)의 염원을 표현했다.
    • 역사 고사: 충효(忠孝)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이나 고사를 그려 유교적 가르침을 전달하기도 했다.
    • 민화풍 그림: 호랑이, 토끼 등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를 해학적으로 그려 넣어 친근함을 더하기도 했다.

 

 

#단청의 종류와 위계

 

 

1등급_가칠단청

  • 정의 및 특징: 문양 없이 목재 부재 전체에 뇌록색이나 석간주색 등 단일 색상만을 칠해 마감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 미적 장식보다는 목재의 부식과 해충을 방지하는 보존 기능에 절대적인 초점을 맞춘다.
  • 적용: 궁궐이나 사찰의 행랑, 창고, 수라간 등 부속 건물과 같이 위계가 가장 낮은 건축물에 적용되었다. 하지만 종묘 정전과 같은 제례 건물의 경우 가칠 단청을 사용하였다.  

2등급_긋기단청

  • 정의 및 특징: 가칠단청 위에 먹선(黑)과 분선(白) 등 직선의 띠를 부재의 윤곽선에 따라 그려 넣는 방식. 선을 통해 각 부재의 구조적 형태를 명료하게 드러내고, 최소한의 장식성을 부여한다.
  • 적용: 가칠단청보다 한 단계 높은 격식을 가진 건물, 예를 들어 사찰의 승방(僧房)이나 궁궐의 일반 관청 건물 등에 사용되었다.

3등급_모로단청

  • 정의 및 특징: 본격적으로 장식 문양이 도입되는 단계. 부재의 양쪽 끝부분에만 '머리초'라는 규격화된 문양을 그려 넣고, 중앙부는 긋기단청으로 마감하여 여백을 남기는 것이 핵심이다. 장식성과 경제성을 절충한 가장 보편적인 형식이다.
  • 적용: 궁궐과 사찰의 대부분의 일반 건물, 즉 왕의 침전, 동궁, 주요 전각 및 사찰의 보조 법당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4등급_금모로단청

  • 정의 및 특징: 모로단청의 기본 틀(끝에만 문양을 그림)을 유지하되, 머리초 문양을 금단청 수준으로 매우 복잡하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과도기적 단계이다. 금박(金箔)이나 다채로운 색상을 사용하여 일반 모로단청보다 월등히 화려한 인상을 준다.
  • 적용: 모로단청을 적용하기에는 건물의 격이 높고, 금단청을 적용하기에는 최상위 등급이 아닌 건물에 사용되었다. 궁궐의 중요한 문이나 정자(亭子), 왕실과 관련된 사찰의 주요 건물 등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5등급_금단청 

  • 정의 및 특징: 가장 장엄하고 화려한 최상급 단청. 부재의 모든 표면을 빈틈없이 복잡한 문양으로 가득 채워 여백을 거의 남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비단에 금을 올린 듯하다'는 이름처럼, 최고의 기술과 재료를 동원하여 절대적인 권위와 신성함을 표현한다.
  • 적용: 국가의 정통성과 존엄을 상징하는 최고 위계의 건물에만 엄격히 제한되었다. 왕이 국가 중대사를 거행하던 궁궐의 정전(正殿, 예: 경복궁 근정전)과 사찰의 주불(主佛)을 모신 중심 법당(大雄殿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단청은 단순히 목조 건축물에 색을 입히는 행위를 넘어, 목재를 보호하는 실용적 기능에서 출발하여, 건물의 사회적 위계를 규정하고, 나아가 우주적 질서와 길상의 염원을 담아내는 총체적 예술 행위이다. 재료의 선택에서부터 색의 조합, 문양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는 자연에 순응하고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선조들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오늘날 단청 기술은 단청장(丹靑匠)이라는 장인들을 통해 계승되고 있으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는 단청이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청에 대한 이해는 한국 전통 건축의 미학적, 기능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세계관과 정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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