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메모장
대청마루와 툇마루 본문

# 마루란 공간에 대해서
한옥이 온돌로 겨울의 추위를 다스렸다면, 마루를 통해 여름의 더위를 이겨냈다. 마루는 단순히 나무를 깐 바닥을 말한다. 그 이상으로 마루는 다양한 생활 행위를 담아내는 개방적 공간으로서 마루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옥에는 여러 종류의 마루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대청(大廳)마루와 툇마루(退抹樓)는이름은 비슷하지만 기능과 공간적 위계에서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이번 시간에는 이 두 가지의마루를 조사하려 한다.
# 대청(大廳)마루
대청마루는 큰 마루라는 뜻이다. 한옥의 가장 중심적인 공용 공간이다. 안방과 건넌방처럼 가장 중요한 두 방 사이에 자리 잡아, 집의 물리적·기능적 중심축을 형성한다.
_대청마루의 구조
- 위치와 배치: 대청마루는 일반적으로 안채의 안방과 건넌방 사이, 사랑채의 사랑방과 작은방 사이에 위치하여 건물의 중심축을 형성한다. 이는 각 실(室)을 연결하는 동선의 중심이자, 건물 전체의 공간적 위계를 설정하는 기준점이 된다.
- 고상식(高床式) 구조: 지면으로부터 일정 높이 이상 띄워진 고상식 구조를 가진다. 이는 지면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열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마루 하부의 통풍을 유도하여 시원한 바닥을 유지하기 위하여 설계되었다.
- 개방적 입면(立面) 구성: 대청마루의 가장 큰 특징은 전면(마당 방향)과 후면(뒤뜰 방향)이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개방적 입면은 건물 내외부의 압력 차를 유발하여 자연 통풍을 극대화하며, 이를 통해 여름철 실내 온도를 낮추는 핵심적인 기후 조절 기능을 수행한다. 상류 주택에서는 이 개방면에 분합문(分閤門)이나 들어열개창을 설치하여, 계절에 따라 공간의 개폐를 조절하는 가변성을 확보했다.
- 바닥 구성 (우물마루): 대청마루의 바닥은 주로 '우물마루' 방식으로 시공된다. 이는 긴 부재(장귀틀)와 짧은 부재(동귀틀)를 '井'자 형태로 짜 맞춘 뒤, 그 사이에 널판(청판)을 끼워 넣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목재의 수축과 팽창에 유연하게 대응하여 바닥의 뒤틀림을 최소화하는 기술적 장점을 가진다.
_대청마루의 기능
- 기후 조절 기능: 앞서 언급한 구조적 특징을 통해 여름철 '자연 냉방 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 생활 공간 기능: 평상시에는 가족 구성원이 모여 교류하는 거실이자 소통의 중심이 된다. 또한 농작물을 건조하거나 길쌈, 가마니 짜기 등 다양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는 실내 작업장의 기능을 겸했다.
- 의례(儀禮) 공간 기능: 대청마루는 집안의 가장 중요한 의례가 거행되는 신성한 공간이다.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이며, 관례·혼례·상례·제례(관혼상제)와 같은 가족의 통과의례가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_상징적 기능
- 전이(轉移) 공간: 대청마루는 방으로 대표되는 완전한 내부 공간과 마당으로 대표되는 외부 공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이 중간적 성격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완화하고, 자연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 가족 공동체의 구심점: 집의 물리적 중심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가족의 일상과 중대사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지므로 가족 공동체의 정체성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사회적 구심점 역할을 수행한다.
- 사회적 위계의 표현: 상류 주택에서 대청마루의 규모, 사용된 목재의 질, 장식 등은 그 집안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을 과시하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했다.
#툇마루
툇마루는 '물러나 있는 마루'라는 이름처럼, 방이나 대청의 전면에 좁고 길게 덧대어져 있는 보조적인 공간이다. 그 규모는 작지만, 한옥의 동선 체계를 효율화하고, 공간의 위계를 조절하며, 생활 영역을 확장하는 다층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_툇마루의 구조
툇마루는 일반적으로 방이나 대청의 전면, 즉 마당과 접하는 면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 설치된다. 구조적으로는 툇기둥(별도의 작은 기둥)을 세워 지지하는 방식과, 기둥 없이 동바리(짧은 기둥)나 장선(마루 밑에 가로로 대어서 마룻널을 받치게 한 나무)만으로 하부를 받치는 쪽마루 형태로 나뉜다. 바닥은 주로 장마루(긴 널판을 나란히 까는 방식)로 시공되는 경우가 많다.
_툇마루의 기능
툇마루는 주(主) 공간이 아닌 보조(補助) 공간으로서,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 동선의 효율화
툇마루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외부 복도'**로서의 역할이다. 각 방으로 출입하기 위해 반드시 다른 방을 거쳐야 하는 내부 복도와 달리, 툇마루는 마당을 통해 각 실로의 독립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각 실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동시에, 비를 맞지 않고 건물 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효율적인 외부 동선을 제공한다. - 완충 공간
툇마루는 완전한 내부(방)와 완전한 외부(마당) 사이에 위치하는 **'전이(轉移) 공간'**이다. 이 중간 영역은 다음과 같은 완충 역할을 한다.- 행동적 완충: 실내로 들어가기 전 신발을 벗거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등 공간의 성격 변화에 따른 행동의 변화를 준비하는 물리적 공간을 제공한다.
- 환경적 완충: 여름철 강한 직사광선이 방 안으로 직접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비가 창문으로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는 환경적 버퍼 역할을 수행한다.
- 생활 공간의 확장
툇마루는 방이라는 사적 공간을 외부로 자연스럽게 확장시킨다. 날씨가 좋은 날 툇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바느질과 같은 작은 수작업을 하고, 다과를 즐기는 등 방 안에서만 이루어지던 생활 행위의 영역을 외부로 넓혀준다.
_상징적 기능
- 경계의 모호성과 공간의 풍부함
툇마루는 지붕 아래에 속해있지만 벽체는 없는, 내부도 외부도 아닌 반내반외(半內半外)의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공간적 모호성은 사용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지붕 아래)과 개방감(벽 없음)을 동시에 제공하며, 한옥의 공간을 단절적이지 않고 연속적이며 풍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매개
방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과 마당이라는 비교적 공적인 공간 사이에 위치함으로써, 두 공간의 성격을 급작스럽게 전환시키지 않고 부드럽게 매개한다. 툇마루에 앉아있는 사람은 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며 공적인 영역에 참여할 수도 있고, 동시에 방이라는 사적 영역에 한 발을 딛고 있는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다.
대청마루와 툇마루 비교 요약
| 구분 | 대청마루 (Daechungmaru) | 툇마루 (Toetmaru) |
|---|---|---|
| 위치 | 집의 중심부 (방과 방 사이) | 방의 전면부 (방과 마당 사이) |
| 규모 | 넓고 큰 독립적 공간 | 좁고 긴 부속적 공간 |
| 핵심 기능 | 다목적 중심 공간 (거실, 작업, 의례) | 연결 및 완충 공간 (복도, 버퍼 존) |
| 성격 | 공용적, 구심적, 개방적 | 보조적, 전이적, 경계적 |
| 비유 | 집의 '심장' 또는 '광장' | 집의 '혈관' 또는 '현관 앞 벤치' |
대청마루와 툇마루를 비교하면, 우리 선조들의 공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대청마루는 집의 심장이자 광장이었다. 모든 길이 통하고 모든 사건이 일어나는 구심점으로서, 가족 공동체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 역할을 했다. 반면, 툇마루는 집의 혈관이자 문 앞의 툇돌과 같았다. 각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안과 밖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들게 하며 삶의 여유를 만들어주는 완충지대였다.
이처럼 한옥은 '마루'라는 하나의 건축 요소를 통해 때로는 과감하게 공간의 중심을 설정하고, 때로는 섬세하게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자연과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지혜를 보여준다. 중심과 경계를 모두 아우르는 이 두 마루의 존재야말로 한옥이 가진 공간적 깊이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1295&division=i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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